"솔직히 이 빌드, 지금 플레이하면 아무도 못 깰걸요."
작년 겨울, 한 레트로 게임 보존 포럼에서 누가 2010년 E3 쇼플로어용 다크소울 데모를 덤프한 ROM 이미지를 공개했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저는 평소에 버려진 데이터나 프로토타입을 복원하는 데 꽂히는 취미가 있는데, 그때 받은 파일을 처음 열어본 순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네요. 아니, 이게 그 다크소울이라고?
북방 수용소가 없던 세계
지금 우리가 아는 다크소울은 북방의 수용소에서 시작하잖아요. 썩은 좀비들 사이에서 깨어나 열쇠를 찾고, 데몬에게 박살나는 튜토리얼. 하지만 이 데모 빌드에는 북방의 수용소라는 공간 자체가 없었어요. 플레이어는 곧바로 불의 계승 제단에서 시작했고, "선택받은 언데드"라는 설정도 아직 미완성이었어요.
대신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는 그때 프롬소프트웨어 내부에서 진행된 어떤 논쟁을 짐작하게 해요. 당시 미야자키 히데타카와 레벨 디자이너들 사이에선 "지나친 튜토리얼이 몰입을 깰까?" 하는 고민이 있었거든요. 결과적으로 우리는 수용소라는, 난이도에 익숙해질 완충 지대를 얻었지만 데모 버전은 그런 배려가 전혀 없어요.
적 배치의 집요한 악의
데모에서 가장 무서운 건 적 배치였어요. 성당 깊은 곳에 가면 지금은 발데르의 기사가 한두 마리 있는 복도가 있는데, 그쪽에 블랙 나이트가 3개체나 연속으로 배치되어 있었어요. 그것도 상자 뒤에 숨어서 기습하는 패턴으로요. 회복하기 전에 다음 기사가 이미 검을 휘둘러요. 이 배치는 "난이도가 아니라 그냥 설계 실수 아닌가?" 싶을 정도였지만, 한편으로는 프롬이 초기에 생각했던 "절망감의 선"이 어디쯤이었는지 적나게 보여주는 대목이에요.
이런 미완성 배치를 보면서 갑자기 떠오른 게, 올해 초에 스팀에서 3일 만에 판매 중단된 어떤 인디 게임이에요. 개발자와 몇 번 메일을 주고받았어서 내부 이야기를 조금 아는데, 그 게임의 실패 원인이 이 데모 버전의 잘못된 적 배치와 정확히 같은 패턴이었어요.
완성되지 않은 난이도가 게임을 죽이다
그 인디 게임은 2D 액션 플랫포머였어요. "다크소울 같은 긴장감을 주고 싶었다"는 게 개발자의 설명이었는데, 문제는 그분이 데모 버전이 아닌 완성된 다크소울의 난이도를 모방했다는 거예요. 적을 한 번에 5마리씩, 그것도 좁은 복도에 몰아넣었고, 튜토리얼은 아예 없었어요. 프롬이 데모에서 실험하고 폐기했던 바로 그 실수를 그대로 반복한 거죠.
개발자가 후회 섞인 목소리로 그러더군요. "난이도가 아니라 유저가 문제를 해결하는 리듬을 먼저 설계해야 했어요." 북방 수용소가 바로 그 리듬을 만드는 장치였다는 걸, 데모를 보면 알 수 있어요. 죽음을 통해 배우게 하는 구조인데, 그 죽음이 공정해야 한다는 거예요. 데모에는 그 공정함이 없어요. 그냥 억까에 가까웠고, 그래서 폐기된 거겠죠.
실패에서 배우는 설계 원칙
마포나 홍대 인근의 어떤 공간을 기획할 때도 이 이야기는 은근히 들려줄 만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지역의 서비스 업체를 선택할 때 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은, '최고급'이라는 수식어에 현혹돠서 정작 중요한 접근성이나 동선의 흐름을 간과한다는 점이에요. 마치 그 인디 게임이 난이도만 보고 유저의 숨 쉴 틈을 생각하지 못한 것처럼요. 어떤 공간이 진짜 완성도를 갖췄는지 판단하는 기준이 궁금하다면 이쪽을 참고해도 좋을 거고요.
데모의 데이터를 복원하면서 얻은 교훈은 단순해요. 불편함은 의도되어야 하고, 그 의도를 유저가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걸 못 하면 3일 만에 사라질 수밖에 없어요. 그 인디 게임의 스팀 페이지가 지금은 404로 뜨는데, 거기서 배울 게 더 많아요. 성공한 게임보다 실패한 게임의 폐기된 빌드가 훨씬 솔직하니까요.